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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넷플릭스 수리남 실제인물 조봉행에 대해

by 희수호 2022.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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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생으로 1990년대까지 선박 냉동기사로 일하며 해외 곳곳을 돌아다니던 평범한 엔지니어였습니다.

1980년경 일때문에 남미 대륙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나라 수리남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8년이라는 시간동안 거주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 와 왔습니다.

그러던 1994년 5월 조봉행은 빌라를 짓는다는 명목으로 10억원대의 투사자기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렇게 조봉행은 사기죄로 수배를 받게 되고 경찰에 쫒기던 와중 8년동안 거주한 수리남이라는 나라가 범죄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어 수리남으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수리남은 남미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지만 우리나라의 면적에 1.5배의면적을 가진 나라입니다.

당시 조봉행이 머물던 곳은 수리남의 수도인 파라마리보라는 도시였습니다.

수리남은 사람이 살만큼 개발된 곳이 국토의 2%밖에 안되는 낙후된 곳 이였기에 범죄를 저지르고 숨기에 최적인 나라였습니다. 그곳에서 조봉행은 생선공장을 차리게 되는데 주 수입원은 생선판매가 아니라 어업회사에 제공되는 세금없이 제공되는 기름 면세유를 밀매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으며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장에 중국인 등을 위장 취업시켜 미국, 유럽으로 밀입국 시키는 사업을 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조봉행의 사업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유가 상승 및 단속 강화로 인해 밀매와 밀입국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조봉행은 다른 사업을 모색하던 중 우연치 않은 기회로 남미 마약왕 카르텔을 알게 되어 본격적으로 마약 밀매 및 유통 등 불법 사업을 펼쳤습니다. 그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보호해줄 기관과 권력층에 로 비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그렇게 수리남의 군대 경찰들까지 모두 돈으로 매수하면서 조봉행은 마약 사업을 점점 더 크게 확장시킬 수 있었습니다.심지어 당시 대통령이었던 데시 바우테르서 와도 친분을 쌓기 시작했는데 대통령까지 포섭 한 마당에 두려울 것이 없던 조봉행 자신의 인맥을 발판 삼아 남미 최대 마약 조직 칼리 카르텔과 손을 잡고 자신이 가진 코카인 대부분을 유럽으로 수출했습니다.

조봉행의 마약 밀매 사업이 확장될수록 그는 수리남의 경제를 쥐락 펴락 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물로 성장하게 됩니다.

뒷돈으로 공직자를 매수하는 일쯤 은 우수웠던 조봉행은 수리남의 거주 중인 여행객 정보까지 미리 빼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접근하였습니다.그 사람들에게 자신을 광물 사업가로 소개한 뒤 해외여행도 할겸 유럽으로 보석을 운반해주면 400~500만원을 주겠다 유혹하며 사람들을 매수하여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하였 습니다.

조봉행이 건네 준 보석으로 위장한 코카인을 코카인 인지도 모른 채 운반하던 일반인들은 프랑스 네덜란드를 넘나들다 현지에서 체포돼 짧게는 일년 길게는 이년을 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지인에게 속아 마약을 운반해주다 억울하게 프랑스령 섬인 마르티니크 섬에서 이년간 옥살이를 한 장미정 씨의 사건을 영화 한 2013년 개봉작인 집으로 가는 길 이란 영화도 이 조봉행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문제가 많다 보니 조봉행은 2005년6월 인터폴 수배 명단에 오르게 됩니다 그럼에도 조봉행의 욕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일본과의 마약 거래도 점차 늘려가고 심지어 한국으로의 마약 공급도 계획했던 겁니다.이 정보는 다행히 한국의 국정원과 검찰도 입수하게 되었고 2007년 10월 조봉행 체포를 위한 작전을 세우게 됩니다 문제는 조봉행의 행적이 눈앞에서 뻔히 보인다 한들 조봉행을 체포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수리남의 경찰과 군대 심지어 수리남의 대통령도 조봉행의 사람들이었으며 당시 수리남은 우리나라와 수교 관계이기는 했지만 현지 한국 대사관이 없고 범죄인 인도조약도 없었기에 수리남 입장에선 체포협조를 할 이유가 없어 국정원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2007년 11월 수사에 어려움을 겪던 국정원 앞에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조봉행 때문에 큰 손해를 보았다는 사업가 k이씨를 만난 겁니다 친구의 권유로 특수 용접봉 사업을 위해 수리남의 방문하게 된 k이씨는 현지에서 경제 주권을 꽉 잡고 있는 조봉행 때문에 사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이에 k씨는 베네수엘라 한국 대사관에 이 사실을 알렸고 덕분에 국정원은 조봉행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국정원은 k 씨에게 조봉행 검거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게 됩니다 국제적인 범죄자 검거 작전의 민간인을 투입하는 것은 엄청난 무리수였지만 국정원은 조봉행 검거를 위해서 케이씨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실패할 경우 k 씨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작전이었기 때문에 케이씨는 고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씨는 국정원의 협조요청을 받아들였고 조봉행 검거를 위한 언더커버 작전이 시작됩니다.

 

작전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케이씨가 마약브로커가 되어 국정원이 만들어낸 가상의 재미교포 마약상과 조봉행 사이의 마약 거래를 중계하는 것그렇게 케이씨는 목숨을 걸고 조봉행 에게 접근하여 한국과 유통할 수 있는 거액에 거래처가 있다며 미끼를 던졌습니다. 그러자 한국 진출을 꿈꾸던 조봉행은 미끼를 덥석 물었습니다.

 

케이씨는 작전 수행을 위해 조봉행에 거처해서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언제 들킬 지 몰랐기 때문에 매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고 잠을 잘 때도 베개 밑에 권총을 두고 있었습니다. 케이씨는 특정시간에만 국정원 측과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씨가 국정원과 통화한 것을 조봉행의 부하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정체가 탄로나자 케이시는 조봉행의 부하에게 너도 한국에 가족이 있는데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느냐 나와 손잡고 좋은 일을 하자며 설득했고 국정원과 통화까지 하게 해줬습니다 이때 조봉행의 부하는 마음이 약해졌는지 눈물까지 흘리며 새 사람이 되겠다고 협조를 약속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삼일 뒤 커다란 덩치의 흑인 네 명이 케이씨를 살해하기 위해 케이씨의 숙소 거실을 들이닥쳤습니다 눈물까지 흘리며 협조하겠다던 조봉행의 부하가 변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장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도 케이씨는 조봉행이 자신의 집 밖에 와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미스터 조를 불러 달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이 소리를 들은 조봉행은 실제로 케이씨 앞에 나타나 케이씨의 대범한 태도에 조봉행은 깜빡 넘어가게 되고

 만약 지금 상황이 오해라면 한국 유통이 가능한 귀중한 한국 프로그램을 놓칠 수 있다는 생각이 진짜 장난이었는지 되묻고는 오히려 케이씨를 고발했던 직원을 내쳤다고 합니다.

한편 2008년 초 국정원 조봉행 검거 작전을 위해 미 마약 단속DEA로부터 협조를 받게 됩니다.

DEA는 유사시에 미해군과 특공대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던 2008년 9월 케이시는 조봉행에게 거래할 마약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조봉행은 저녁 시간에 K씨와 한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식당 내 주차장에 들어서자 갑자기 입구 셔터가 내려 치더니 조봉행이 부하들이 케이 시를 차에 태우고 눈을 가린 뒤 총을 케이시의 옆구리를 겨눴다고 합니다 그렇게 눈이 가려진 채 20분이 흐르고 차량은 한 건물의 주차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숨죽이고 있던 케이씨의 복면이 벗겨지자 그의 앞에는 검은 포장의 커다란 코카인 더미 1.2톤이 있었습니다 당시 가격으로 일조 원이 훌쩍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는데 조봉행은 한국에 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물량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케이씨는 눈이 가려진 채 끌려 오긴 했지만 수리남의 지형을 잘 알고 있었던 덕분에 네온사인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조공인이 코카인을 보관한 장소를 파악할 수 있었고 이후 국정원에게 장소를 알려주며 이 마약 단속 국과 함께 급습 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미 마약 단속 국은 마약 조직과의 대규모 총격전이 될 것을 우려하여 급습을 포기하게 됩니다.

조봉행의 범행이 날로 대범해지는 가운데 케이씨는 점점 더 자신의 신변이 위험해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결국 2008년 8월 케이씨는 마약 거래상을 만나러 간다고 핑계를 대고 일단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케이씨는 수리남에서 나왔을 뿐 가족에게 귀국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케이씨가 한국으로 돌아오자 수사에 차질이 생긴 국정원과 미 마약 단속 국은 조봉행을 수리남 밖으로 유인해 체포하는 새로운 작전을 짜게 됩니다

 

우선 한국에 돌아온 케이시는 국제전화를 걸어 미국 마약상이 코카인 1.2t부터 시작하자고 합니다 액수와 송금방법은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라고 전하며 조봉행을 괌으로 유인했습니다

 

하지만 조봉행은 마약은 미국과 엮이면 안 된다며 미국령 인 괌에서의 만남을 거절했습니다 이에 케이씨와 국정원은 심리전을 펼치기 시작했고 일부러 조봉행의 전화를 며칠씩 받지 않아 애타게 만든 뒤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유인하는 쪽으로 나오게끔 유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봉행은 절대 미국령인 괌만큼은 갈 수 없다고 고집했습니다.

접선 장소 문제로 신경전을 펼쳤다고 합니다 결국 케이씨는 겨우겨우 달랜 끝에 조봉행을 브라질 상파울루 과를루스 공항에서 만나자는 답변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2009년 7월 23일 오후 5시 브라질 상파울루에 과룰루스 국제공항에는 권총과 방탄조끼로 무장한 브라질 연방 경찰 여덟 명이 입국장 주변에 잠복했습니다 한국 국정원과 이 작전에 핵심 인물인 케이씨까지 현장에서 대기했습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인 오후 다섯 시가 되었음에도 불과 조공 행은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정됐던 비행기의 탑승자 명단에도 이름이 없었습니다 브라질 연방 경찰은 조봉행이 눈치를 채고 도망친 것 같다며 철수하려 했는데 이때 케이씨는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조봉행 측과 통화를 했습니다 철수를 늦추기 위해 잔머리를 굴린 것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다시 2시간가량이 지나자 드디어 조봉행이 브라질 과를루스 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잠복해 있던 경찰들은 조봉행을 바로 덥 쳤고 마침내 남미 마약왕 조봉행은 검거 되었습니다.

 

조봉행은 한국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아 2011년 징역 10년과 벌금 1억원을 선고받게 됩니다.

이후 형 집행 중 조봉행은 6년전인 2016 4 사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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